그리고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 (장석남)

   

   미선
   정해종 - 근황

근황

-정해종


말해다오
오래 전에 잊혀졌던 여자가 찾아와
알 수 없는 눈물을 뿌리고
그 눈물의 의미도 깨닫기 전에
끝이 보이지 않는 먼길을 돌아서 갈 때
가을이 시작되었노라고, 계절이 와장창 무너져내린 성곽
죽은 매미들의 사해가 으적으적 밟히는
그 길 위를 지금도 배회하고 있노라고, 한 사람이 지나간 흔적을 더듬다 문득
사라져가는 것들의 헤아릴 길 없는 마음이
턱밑까지 차올라 세상 가장 깊은 곳까지
가라앉고 싶었노라고, 말해다오
어디로든 돌아가고 싶은 이 저녁
이정표 없는 길 위로 해가 저물 때, 돌아갈 곳 없는 사람이 만드는
긴 그림자의 끝을 밟고 내가 서 있을 때, 사라져가는 것들 더 멀리 가도록
남아 있는 것들의 풍경 속에서
고사목처럼 삭정이 같은 마음이
뚝, 뚝 부러지는 소리를 듣고 있었노라고, 죽음이 좀더 가까이 다가오고
삶이 조금 더 멀어져갔을 때
그리하여 삶이 죽음과 더불어
나를 바라보고 있을 때, 그 망연한 눈길처럼
가을이 다 지나갔노라고……, 그리고 안부 전해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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