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 (장석남)

   

   미선
   정해종 - 아프리카 폐허를 위하여

아프리카 폐허를 위하여

-정해종


심호흡 한번 크게 하고 땅속을 파고들어
한 이태쯤 늘어지게 잠이라도 자고 싶다
부질없는 욕망들 다 게워낸 다음
심장의 박동을 멈추고, 깊은 어느 지층
딱딱한 유선형 흑벽돌로 박히고 싶다
잠시 이승을 베고 누운 내 몸 위로
세상을 흔들며 들소떼가 달려가고
그 뒤를 사바나 푸른 초원을 휩쓸며
해일 같은 불길이 쫓아가고
밀렵꾼이 목을 축이며 지나가고
반정부군의 낡은 지프가 지나가고
내전이 지나가고, 꿈이 지나가고
개같은 날들이 지나가고
덜 익은 희망이 지나가고
철없는 사랑이 지나가고
널 몹시 아프게 했던 상처가 지나가고
최루탄과 화염병이, 욕설과 연민이, 권태와 욕정과 술주정이 지나가고
행렬을 이탈한 난민들이 지나가겠지
더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엔
쥐라기 이전부터 앓아온 열병의
유전자는 플랑크톤이 되고
고독은 화석이 되고
의식은 호박 속에 갇히겠지
우기가 시작되면
풀리는 진흙 속에서 나는 눈뜨겠지만
이 폐허의 수심을 떠나진 못하리라
폐허……, 폐― 하고 발음했을 때
터져나오는 그 파열음의 허무를, 파열하는 허무를, 허무의 파열을
썩어가는 폐를 가진 자들은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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