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전화를 받지 말아야지.
나 혼자 오롯이 지내봐야지.
전화벨 소리 조절기를 가장 작게 줄여놓고
롯데백화점 종이가방에 전화기를 넣은 다음
방석으로 덮습니다.
자주 전화가 오는 날은
받다가 말다가
말다가 받다가
저녁 느지막쯤부터는 의기양양
아주 안 받을 수 있지요.
나는 유쾌한 섬이 되지요.
그런데 전화가 드문 날 저녁엔
처음 한두 번까지
나흘 굶은 귀뚜라미 같은 전화벨 소리를 못 들은 척하다가
세번째 벨이 울릴 무렵 허둥지둥
꾸러미를 풀고 전화를 받습니다.
그저 누구인가 궁금한 거예요.
이때 내가
주눅든 볼멘소리로 대꾸하는 것 이해하시겠지요?
평생 전화기 근처를 서성일 나.
아무래도 전화를 반납해야 될까봐요.
이렇게 생각하니
오싹 세상이 추워지는군요.
비틀어진 탯줄이 전화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