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 (장석남)

   

   미선
   최문자 - 땅에다 쓴 시

땅에다 쓴 시

-최문자


나는
땅바닥에 대고 시를 썼다.
돌짝도 흙덩이도 부서진 사금파리도
그대로 찍혀나오는
울퉁불퉁했던 내 것들.
삐뚤삐뚤 한글 자모가 나가고
미어진 종이 위에서
연필은 몇 자루 못쓰고 늘 부러졌다.
시에서 지금지금 흙부스러기가 씹혔다.
죽었던 내 부스러기들이 씹혔다.

더 이상 세상에 매달리지 못하는 것들은
모두 땅바닥에 와있었다.
죽은 꽃잎에 대고
죽은 사과알에 대고
작은 새의 죽은 눈언저리에 대고
꾹꾹 눌러 썼다.
에스겔서에 나오는 골짜기 마른 뼈들처럼
우드득 우드득
무릎 관절 맞추며 붙이며
죽은 것들이 일어섰다.
나는 흙바닥에 대고 시를 쓴다.

죽음도 사랑도 절망도 솟구치며 찍혀나오는
미어지는 종이 위에 꾹꾹 눌러쓴다.
몇 자 못쓰고 부러지는 연필 끝에
침 대신 두근거리는 피를 바른다.
시에서 늘 비린내가 풍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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