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 (장석남)

   

   미선
   장석주 - 설운 사랑


설운 사랑

-장석주

문설주에 거미가 알 스는 저녁
고추모종 싣고 내려왔던 이장네 경운기 돌아간 뒤
어둠 내려와 비질하니 길은 깨끗하다.
방물장사도 지나갔을 저 길로 들어오는
당신 얼굴 윤곽이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다.
고요가 저렇게 공들여 뜸들이니
곧 초생달 뜨고 뜸 잘든 고봉밥 먹겠다.
꽃 핀 태정이네 감자밭 가에 나와 앉아
싯퍼런 감자 줄기나 바라보며
밥힘으로 살아온 나 같은 사람은
불 안킨 봉창 두엇 달고
저 혼자 식어가는 외딴집 같은
갈빗뼈 아래 심장을 가만히 어루만진다.
주리 트는 세월은 아니었다 해도
몇 번의 굼뉘 지나가고 있었다.
아직도 설움 따윈 도무지 모르겠다는 듯
붉은 석류 속 같은 저 생의 내부를
새삼 들여다본다, 땅 강아지 기어간다.
사는 건 힘들다고 할 수 없었다.
무릎께까지 내리다 만 사랑이
무릎 관절 다 녹여 뭉개버렸을 뿐이다.
검은 벌레처럼 오르다 뚝, 뚝 지는 밤
감자밭 가에 박힌 돌은 묵묵히 있어도
묵정밭에는 염문이 번져 시종 시끄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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