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 (장석남)

   

   미선
   원재훈 - 망각

망각

-원재훈


자유로 끝에서 한 여인이 말했다

가을이 되면 잠자리들이 자살을 해요
잠자리 때문에 속력을 늦추는 차는 없지요
툭툭 떨어지는 잠자리들이 도로에 즐비해요
마치 총맞은 무장공비 같아요
전쟁 때 죽은 아군이거나 적군의 영혼일 수도 있겠지요
코스모스 잠자리의 주검을 덮으면
도로는 꽃무덤이 됩니다
철새들이 돌아오면 노을이 기뻐하는 게 보여요
그걸 보며 날개에 나의 몸을 실어 냅니다

그리움이 깊으면 마음이 가여워지고요
사랑이 깊으면 몸이 가여워지고요

나의 영혼이 잠자리의 날개에 실려
자동차 차장에 부딪치면 눈이 부셔요
하얗게 떨어지는 햇살이 바로 그거지요

잠자리의 몸은 도로에 껌처럼 붙어 있지만
당신을 행한 나의 영혼은 햇살이 되어 눈부신답니다
잊었겠지요 많이 바빴지요

그래..., 그래...,

자유로 끝에서 한 남자가 잠자리가 되고 있다
그래그래 중얼거리며 잠자리가 되어 날고 싶어한다
세상에 모든 걸 망각하고 싶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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