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 (장석남)

   

   미선
   서정주 - 그 애가 물동이의 물을 한 방울도 안 엎지르고 걸어왔을 때

그 애가 물동이의 물을 한 방울도
안 엎지르고 걸어왔을 때

-서정주


  그 애가 샘에서 물동이에 물을 길어 머리 위에 이고 오는 것
을 나는 항용 모시밭 사잇길에 서서 지켜보고 있었는데요. 동이
갓의 물방울이 그 애의 이마에 들어 그 애 눈썹을 적시고 있을
때는 그 애는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그냥 지나갔지만, 그 동
이의 물을 한 방울도 안 엎지르고 조심해 걸어와서 내 앞을 지
날 때는 그 애는 내게 눈을 보내 나와 눈을 맞추고 빙그레 소리
없이 웃었읍니다. 아마 그 애는 그 물동이의 물을 한방울도 안
엎지르고 걸을 수 있을 때만 나하고 눈을 맞추기로 작정했던 것
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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