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만 견디고 있는 게 아니므로 세월은 또 느릿느릿 흘러갈 것이다...(강연호)


   

   미선
   그럴 수 있기를...

며칠 전 엄마가 문득, 책을 읽고 싶다고 했다.
그 말에 나는 왠지 가슴이 뭉클했다.
작은 글씨는 잘 안 보이니
보기에 편한 책으로 읽고 싶다고 했다.
그 말에 또한번 가슴이 뭉클했다.

초등학교 때 엄마가 나대신 책을 읽고
독후감을 써주신 적이 있다.
나는 엄마가 써준 글을 원고지에 옮겨적었고
내 이름이 적힌 상장을 받아왔다.
그랬다. 그러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가끔
엄마가 나에게 뭔가를 가져와서는
읽어보고 말해달라고 할 때가 있다.
안경을 쓰지 않고는
작은 글씨가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엄마도 어느덧 글을 읽는데
돋보기가 필요한 나이가 되어버린 거다.
그리고 우리도 어느덧 자라서
엄마의 잔소리를 귀찮아 하는
그런 나이가 되어버린 거다.

그래서 엄마는 이제
책이 읽고 싶어진 건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엄마는 이제
다른 사람의 노래가 아닌
엄마 자신의 노래가 듣고 싶어진 건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합창을 시작하셨던 것일지도
아마도 그래서 그랬을지도...

오늘 언니와 서점에 가서 엄마에게 줄 책을 샀다.  
"엄마 잔소리가 없으면 하루도 못사는 딸들
엄마 사랑하여요."
라고 적어 엄마에게 책을 드렸다.
엄마가 웃으셨다.

그리고 오늘,
강연호의 시집을 한권 샀다.
서점 점원에게 부탁하면
쉽게 찾을 수 있었을 테지만
수많은 시집들 사이를
일부러 오래 헤매고 더듬던 끝에
그의 시집을 한권 찾아냈다.
사진 속 그의 얼굴이 맘에 들어
나는 오래도록 쳐다보았다.
세상의 모든 뿌리는 젖어 있다...
라는, 그 시집의 제목과 그는
왠지 닮아있었다.

직접 눈으로 보지 않아도
직접 눈에 보이지 않아도
세상의 모든 뿌리가 젖어있음을 볼 수 있는
느낄 수 있는 그런 한 해가 되기를
제발, 그럴 수 있기를...




name  password :

  ↑prev   점점... 미선  
  ↓next   아마도.. 어쩌면요... 미선  



Copyright 1999-2026 Zeroboard / skin by jej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