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 (장석남)

   

   미선
   강연호 - 적소에서

적소(謫所)에서

-강연호

산복도로 기어오른 바람이
창백한 반달을 간신히 하늘에 띄워올린다
생각을 놓치면 미끄러질까 걱정되어
어둠도 빨래집게로 입가 누른 채 펄럭이고
비탈 움키고 잠든 그대의 거쳐가
저기 반 박자 늦게 빗살무늬로 흔들린다
그대 만나고 돌아오는 길은 마음조차
내리막이어서
오늘은 나 이쯤에서 가파른 발걸음 달랠 뿐이다
사람이 만든 길을 풀꽃들이 다시
지울 때까지
우리 절연의 가슴도 골짜기마다
얼음장 맺히고 풀릴 일 하나로 바쁠 것이다
그러니 그리운이여
그대만 견디고 있는게 아니다

모든 유배된 삶은 쓸쓸하다. 지금 당신이 당신 곁에 없는
누군가를 그리워한다면, 결국은 당신과 마찬가지로, 당신이
그리워하는 그 누군가도 역시 적소에서 견뎌내고 있음을 기억하기
바란다.
사실 유배되지 않은 삶이 어디 있겠는가. 다만 그때 우리의
견디는 자세가 삶의 질을 결정한다. 그러니 유배된 날들이여 그리움이여,
더 적막해지고 더 쓸쓸해지기를. 세상에 견디지 못할 쓸쓸함은 없고,
만약 있다면 그것은 이미 쓸쓸함의 포즈에 다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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