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물안개가 지펴진다
저물녘 비스듬한 생각에 지친 노을이
곱게 머리 풀고 누운 뒤
두리번두리번 일어서는 안개의 뿌리
멀리 사람들이 일구어 놓은 마을 쪽에서
잔잔하게 솟아오르던 끼니와
모래톱 아슬아슬하게 세워놓은 물살
그리고 우리보다 먼저 나서며
툭툭 강둑길 향해 걷던 낙엽들
모두를 집요하게 함락시키고
문득 더듬어 보는 우리들 가슴 언저리에
통증처럼 안개는 이미 젖어 있다
우리가 지나온 길 뒤쪽에
길게 그림자 끌어가는 세월
버리고 줍고 다시 버린 날들이
그것도 그리움이라고 숨죽여 흐르고 있다
움켜도 물장구쳐도 머리칼처럼 빠져나가는
영혼의 우울한 나들이
강물을 저렇게 돌 사이로 흘러
스스로 깊어지며 저무는 법을 아는데
목울대 근질거리는 물음 하나
우리는? 우리의 철없는 野性은?
안개 깊어 어느 새 지척이 천리
묵묵한 동행은 아예 보이지 않지만
알 수 있다, 다만 고개 흔든다는 것을
사람 사는 풍습에 휘말려
書冊 낭랑하던 초록의 시절 간 곳 없고
막무가내이리라 이렇게 몸 섞다 보면
우리도 마저 안개로 지펴지는 건 아닌지
익다 지친 깨금알 두엇
강물의 중심으로 대답 대신 떨어지는 소리
가을, 그 끝 모를 깊이에서
잠깐 침묵하는 먹머구리떼
아직 우리에게 남은 것은
남아서 그림자처럼 기웃거리며 손 벌리는 것은
제풀에 꺾인 그리움일 뿐
세상은 도대체 바닥 없는 우물 속 같은
울음을 보여주지 않는다
돌아가는 길을 잃는다
얼핏 사람 냄새, 아 여기 있었군
안개에 잔뜩 그슬린 얼굴로
동행은 담뱃불을 건네 준다
마을 쪽에선 아무도 불러 주지 않고
이제야 저녁잠 털어내는 달빛 달빛
안개에 허옇게 부풀어 있다
우리가 우리를 찾아 맨발로 헤매인
아득한 胸痛의 가을 강 저녁 산책
스스로 깊어지며 저무는 법을 아는 강물처럼
우리도 어디쯤에선 저물어야 하는지
애매하게 다만 애매하게 혀 차며
거 참, 도무지 말을 잃고 길을 잃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