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 (장석남)

   

   미선
   장석주 시집 <크고 헐렁헐렁한 바지> 自序

  오랫동안 불행이야말로 내 시의 원천이었다. 이제 그 원천을 폐쇄해버리고 다른 원천을 찾아내고 싶다. 이를테면 유머, 육체의 기쁨, 더 이상 어떤 이유로도 유예하고 싶지 않은 행복들...... 어둠, 절망, 불행들은 상대하고 싶지 않다. 나는 그만 행복 속으로 망명하고 싶다. 망명한 후에 내 시집들을 사라질 운명의 것들, 이를테면 지난해의 달력, 바스라져버리는 마른 잎사귀들, 물이 말라버린 우물, 석양빛, 파충류의 허물들...... 의 목록 속에 넣어버리고 싶다. 빛바래도록 오래 팽개쳐두고 싶다.

1996년 3월  
장   석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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