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만 견디고 있는 게 아니므로 세월은 또 느릿느릿 흘러갈 것이다...(강연호)


   

   미선
   천오백원짜리 헌책

언니가 며칠 전에
헌책방에서 천오백원을 주고 사온 책이 있다.
A. 알바레즈의 <자살의 연구> 라는 책.

잠도 안오고 해서 그 책을 읽어보기로 했다.
사실, 그 책을 읽겠다는 목적보다는
그 책을 읽다가 스르르 잠이 들어버렸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그 책을 선택했다.
그 책이 나에게 수면제 역할을 해주리라는 기대.

내 예상대로 그 책은 역시 재미없었다.
근데 이상하게도 그 책을 쉽게 놓아버릴수는 없었다.

누렇게 바랜 그 책의 맨 앞장에는 이렇게 써있다.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사법학과 임복규"

그리고 그 책 맨 뒷장에는 이런 글이 써있다.

소비대차계약서
대주 : 임복규
차주 : 김현룡 귀하
위 사람에게 대주가 이책을 다 본 날로부터
상당한 기간 차주에게 대여할 것을 계약합니다.
1985. 5. 31.
임복규

책을 읽다가 언니에게 물었다.
이사람 지금쯤 뭐하며 살고 있을까? 변호사 됐을까?
그러자 언니가 말했다. 자살했을지도 모르지...

언니가 잠들고 나서
나는 컴퓨터를 켜고 그앞에 앉았다.
그리고 '임복규'라는 이름으로 검색.
임복규 판사, 혹은 임복규 변호사...

--서울지법 민사단독 20부 임복규 판사는 12일 “집배원이 편지내용을 발설해 명예가 훼손됐다”며 이모씨가 국가와 집배원 백모씨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피고는 200만원을 지급하라”고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2002년 11월 12일 법률관련뉴스)--

오호... 이 사람 살아있군... ^__^
근데 임복규... 그사람이 누군데?

나는 오늘 천오백원짜리 헌책 속에서
얼굴도 모르는 어떤 사람의 젊었던 시간을 만났다.
비록 그것뿐이었지만, 반가운 인연이었다.

이제는 나도 그만 자야겠다...





name  password :

  ↑prev   You Are A Drug To Me [1] 희봉  
  ↓next   사랑때문에 죽는 사람들은 미선  



Copyright 1999-2026 Zeroboard / skin by jej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