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는 이렇게 묻는다.
"과잉이 원인인가 결핍이 원인인가?" 당신이 천 개의 손을 내밀 때, 그것은 베푸는 것인가 구걸하는 것인가? 당신이 지금 고통받고 있다면, 그것은 "생의 과잉때문인가 생의 빈곤때문인가?" 당신은 지금 "어떤 사막도 옥토로 바꿀 수 있을 만큼" 풍성한가 아니면 "어떤 옥토도 사막으로 바꾸어 버릴 만큼" 메말라 있는가?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어떤 사람이 자신의 길을 걷고 있는지는 그 걸음걸이를 보면 알 수 있다." 그가 "지혜의 친구"인지, "진리의 노예"인지는 진리를 대하는 표정을 보면 알 수 있다. "모든 좋은 것들은 웃는다. 어떤 사람이 정말로 자신의 길을 걷고 있는지는 그 걸음걸이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내가 걷는 것을 보라. 자신의 목표에 다가가는 자는 춤을 춘다." 춤을 잘 추다 보면 획일적 리듬이 불편하다는 것을 알게 되고, 환하게 웃다보면 구토를 불러일으키는 사회의 엄숙함에 더 크게 웃게 된다. 발이 정말로 가벼워지면 "대지 위에 늪과 두터운 비애가 있다고 해도 쉽게 건너뛰고 달릴 것이며 마치 빙판 위에서처럼 멋지게 춤을 출 수 있을 것이다."
좋은 해석을 위해서도 좋은 삶을 살지 않으면 안된다. 해석하기 위해서도 실천이 필요하다. 니체가 친구에게 보낸 편지대로 "삶의 방식을 바꾸기 전에 병은 낫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