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에 사람이 타인에게 올바르게 인식되기를 바란다면
단지 자기가 누구인지를 솔직히 말하지 않으면 안 된다.
침묵을 지키고 있거나 거짓말을 하면 사람은 고독하게 죽게 되고
그의 주의의 모든 것은 불행에 빠지고 만다.
그 반대로, 사실을 말한다면 그 역시 언젠가는 죽게 되겠지만
타인과 자기 자신이 살아갈 수 있도록 돕고 나서 죽게 되는 것이다.
-알베르 카뮈 <오해> 서문에서
인간들의 불행은 단순명료한 말을 쓰지 않는 데서 오는 것입니다.
만약 <오해>의 주인공이 '접니다. 어머니의 아들이에요' 하고 말하기만 했던들
대화가 가능해졌을 터이고 연극에서와 같은 실수는 없었을 겁니다.
그랬더라면 비극도 없었겠지요.
왜냐하면 비극 중의 극치는 바로 주인공이 귀가 멀었다는 데서 생기는 것이니까요.
그런 시각에서 보면 예수와 니체가 아니라 소크라테스의 생각이 옳습니다.
발전과 진정한 위대함은 고독한 산꼭대기에서 명령하듯 건네주는 독백이 아니라
인간의 높이에 맞는 대화에 있는 것입니다.
제가 지금 도달한 결론은 이런 것입니다.
부조리에 균형을 부여하는 것은 그 부조리에 맞써 싸우는 인간 공동체입니다.
우리가 그 공동체에 봉사하기로 마음 먹는다면
그것은 곧 거짓과 침묵의 정치학에 대항하여 대화에 봉사하는 쪽을 선택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로 그런 방식으로 우리는 타인들과 더불어 자유로워질 수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