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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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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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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든 테레사 곁에서 뒤척이다가 몇 년 전 그녀가 무심코 던진 말이 떠올랐다. 그들이 친구 Z에 대해 이야기하던 중에 그녀가 말했다. "당신과 만나지 않았으면 나는 틀림없이 그를 사랑했을 거예요"
당시에도 그 말을 듣고 토마스는 야릇한 멜랑콜리에 빠졌었다. 테레사가 그의 친구 Z가 아닌 자기와 사랑에 빠진 것은 철저히 우연이라는 사실을 문득 깨달은 것이다. 토마스와 이루어진 사랑 외에도 가능성의 왕국에는 다른 남자와의 실현되지 않은 무수한 사랑이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 모두에게는 사랑이란 뭔가 가벼운 것, 전혀 무게가 나가지 않는 무엇이라고는 생각조차 할 수 없다는 믿음이 있다. 우리는 우리의 사랑이 반드시 이런 것이어야 한다고 상상한다. 또한 사랑이 없으면 우리의 삶도 더 이상 삶이 아닐 거라고 믿는다. 침울하고 흉측한 표정의 베토벤도 몸소 그의 <그래야만 한다!>를 우리의 위대한 사랑을 위해 연주했다고 확신한다.
토마스는 그의 친구 Z에 대해 테레사가 한 말을 떠올리고 그들의 사랑의 역사는 <그래야만 한다!>라기보다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도 있었는데......>에 근거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7년 전 테레사가 살고 있던 도시의 병원에 <우연히> 치료하기 힘든 편도선 환자가 발생했고, 토마스가 일하던 병원의 과장이 급히 호출되었다. 그런데 <우연히> 과장은 좌골 신경통에 걸려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그는 자기 대신 토마스를 시골 마을에 보냈던 것이다. 그 마을에는 다섯 개의 호텔이 있었는데, 토마스는 <우연히> 테레사가 일하던 호텔에 들었다. <우연히> 열차가 떠나기 전까지 시간이 남아 그는 술집에 들어가 앉았던 것이다. 테레사가 <우연히> 당번이었고 <우연히> 토마스의 테이블을 담당했다. 따라서 토마스를 테레사에게 데려가기 위해 여섯 개의 우연이 연속적으로 존재해야만 했고, 그것이 없었다면 그는 테레사에게까지 이르지 못했을 것이다.
취리히에서 프라하로 돌아온 이래 토마스는 테레사와의 만남이 여섯 개의 우연이 만들어낸 결과라는 생각 때문에 불쾌한 심정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런데 한 사건이 보다 많은 우연에 의해 좌우될수록 보다 중요하고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지나 않을까?
우연만이 우리에게 어떤 계시로 보여졌다. 필연에 의해 발생하는 것, 기다려왔던 것, 매일 반복되는 것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오로지 우연만이 웅변적이다. 집시들이 커피잔 바닥에서 커피 가루가 그린 형상을 통해 의미를 읽듯이, 우리는 우연의 의미를 해독하려고 애쓴다.
우연은 필연성과는 달리 이런 주술적 힘을 지닌다. 하나의 사랑이 잊혀지지 않기 위해서는 성 프란체스코의 어깨에 새들이 모여 앉듯 여러 우연이 합해져야만 한다.
인간의 삶은 마치 악보처럼 구성된다. 미적 감각에 의해 인도된 인간은 우연한 사건을 인생의 악보에 각인될 하나의 테마로 변형시킨다. 그리고 작곡가가 소나타의 테마를 다루듯 그것을 반복하고, 변화시키고, 발전시킬 것이다.
소설이 신비스러운 우연의 만남에 매료된다고 해서 비난할 수 없는 반면, 인간이 이러한 우연을 보지 못하고 그의 삶에서 미적 차원을 배제한다면 이것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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