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만 견디고 있는 게 아니므로 세월은 또 느릿느릿 흘러갈 것이다...(강연호)


   

   미선
   모순

반레의 소설에는 미국이 왜, 어떻게 해서 베트남 전쟁에서 패배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대답이 담겨 있다. 미국이 베트남에 패배한 것은 감당할 수 없는 정글 때문도, 거미줄처럼 얽힌 땅굴 때문도 아니었다. 베트남 사람들이 옳았기 때문이다. 미국의 백분의 일에도 못 미치는 무기를 지니고 있었지만, 베트남 사람들이 미국보다 백 배는 옳고 천 배는 더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미국 영화가 최후로 내세우는 미덕인 그 잘난 전우애보다 베트남 사람들의 동포애가 만 배는 더 뜨거웠기 때문이다. 어떠한 무기도 인간을 능가할 수 없으며, 어떠한 이념도 인간에 우선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반레의 소설은 슬프고도 장엄하게 보여준다.

-반레 장편소설 <그대 아직 살아 있다면> (발문 중에서)


지금 내방 벽면에는 큰 지도 두 개가 붙어있다. 하나는 세계지도이고 또하나는 베트남-라오스-캄보디아를 포함하는 인도차이나반도의 지도이다. 나는 언니가 붙여놓은 세계지도를 보면서, 그 세계지도에서 언니가 동그라미를 쳐놓은 베트남을 보면서 왜 하필이면 저곳일까... 생각하곤 했다. 저렇게 많은 나라들 중에서 언니는 왜 하필이면 저곳에 가고 싶어 하는 것일까... 하고 말이다. 그리고 지금 나는 문득 그런 생각을 해본다. 만약 베트남이 아니었다면, 같이 가자던 언니의 말에 나의 대답이 달라졌을까...

언니가 베트남으로 베낭여행을 떠난지도 일주일이 넘어간다.  여행을 떠나기 전, 베트남에 관련된 것이라면 영화든 소설이든 책이든 뭐든지 사서 보고 모으던 언니를 나는 이제서야 이해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베트남을 좀더 이해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게, 지금 막 읽기를 끝낸, 베트남 작가 반레의 소설 <그대 아직 살아 있다면> 때문이라고 한다면 과장처럼 느껴질까...

베트남으로 여행을 가겠다고 하는 언니를 보면서, 나는  세계지도 속의 유럽대륙을 아쉬운 시선으로 쳐다보곤 했다. '전쟁' 혹은 '식민지' 라는 말밖에는 떠오르는 것이 없는 베트남보다는 화려한 역사와 문화를 간직하고 있는 유럽이 내겐 더욱 매혹적으로 느껴졌기때문이다. 그리고 솔직히 그런 느낌이 앞으로도 쉽게 바뀔것 같지는 않다. 오늘밤, 소설책 한권을 통해 얻는 이 느낌과 호기심이 과연 얼마나 오래갈지는 솔직히 나조차도 장담하기 어려우니까.

하지만 지금 그리고 앞으로도 분명 장담할 수 있는 건, 같이 가자던 언니의 제안에 "싫어" 라고 말했던 걸 나는 지금 분명 후회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후회하게 되리라는 것. 그렇지만 다시 언니가 내게 똑같은 질문을 한다면 나는 역시 "싫어" 라고 대답하리라는 것. 그래서 언니 걸음의 반정도만 겨우 따라가며 멀찌감치 서서 '거긴 뭐가 있어?' 물으며 언니가 몸으로 뛰어들어 느낀 것들을 나는 머리로만 이해하려하며 고개를 끄덕이게 되리라는 것. 그게 바로 어쩔수 없는 '나'라는 인간의 모순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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